나도 이미 다 봤고 다른 사람들도 다 봤지만... 이건 남겨야 해!!!! 하고 스캔 시작ㅋㅋ
분철 안 하고 통째로 스캔하려고 용썼더니 나중엔 팔에 쥐가 ∑(ㅇ0ㅇ
가로 사이즈만 1680으로 통일, 우리집 해상도에 맞췄어요ㅋㅋㅋ
기사도 읽을 분은 읽으시라고 안 잘랐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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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딩이 길어질수도 있으니.. 접어 놓겠어요~
오카다 준이치 in 에스토니아
행복이 머무는 곳
Junichi Okada in Eesti Vabariik
세계유산 거리와 아름다운 숲으로
올해로 10년짜리 여권이 끝난다는 오카다 준이치씨. 스페인, 터키, 멕시코, 미국, 중국, 스웨덴... 거기에는 지금까지 방문했던 20여 개국 이상의 스탬프가 찍혀있다. 그리고 거의 비슷하게 30세 생일을 맞이한다고 한다. Grazia는 이런 단락에 있는 오카다씨을 여행에 초대했다. '세계유산' '자연' '거의 알지 못하는 나라에 가보고 싶다' '현지 사람들과의 만남도 기대' 오카다씨가 준 키워드로부터 우리가 다다른 곳은, 북구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 그곳에서의 만남이, 오카다 준이치를 바꾼다.
세계 유산의 거리는 세계 굴지의 IT 국가였다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의 서쪽에 근접한 발트 3국 중 하나. 수도 탈린은 세계유산인 거리를 보존하는 한편, 국토의 약 절반이 숲으로 자연이 풍부한 나라이기도 하다. 다만, 일본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정보가 적다. 그렇게 더듬거리는 상태로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핀 에어로 9시간 반. 우선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내려, 거기서부터 배를 타고 탈린으로 들어가는 코스다.
"이제부터 어떤 만남이 있을까 생각하니 두근두근해요"
배 안에서, 저런 말을 하며 눈을 반짝이던 오카다씨. 그러나 다음 날, 마음 가는 대로 거리를 걸으며, 그 지방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인상을 품게 된 것 같았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하이테크 국가에요. 전 국민이 전자 D카드를 가지고 은행 송금부터 세금 확정 신고, 선거 투표까지 전부 컴퓨터상에서 처리하고 있다니. 그렇다고 해서 아득바득하려는 분위기가 아니라, 다들 여유롭고 상냥한 미소를 띠고 있어요. 하이테크 화는, 오래된 것이나 환경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가 봐요. 이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1.9. 구시가지 내에서. 길이 꽤 복잡해서 헤매기 쉽다.
2.7. 높이 124m의 성 올라프 (St. Olav's Church) 교회에서 구시가지를 내려다봤다.
3.8.16. 탈린 교외에 있는 피리타ピリタ수도원 터의 잔디밭에 가로누워. "그래도 시차 적응은 잘해요. 여행 전날은 밤을 새우고, 비행기에서 푹 자니까"
폐허 앞 정원에는, 17세기에 만들어진 농부들의 무덤이 다수 있었다. 신묘한 얼굴로 보고 있더니, 실은 "이 잔디를 보고 있으면 누군가에게 격투기의 기술을 걸고 싶어져..." 라고.
4. 구시가지의 노점에서 판매하는 에스토니아의 인기 화가 나비트로라(ナヴィトロ―ラ)의 그림엽서를 구입.
5. 헬싱키에서 탈린으로 가는 배 위에서. 오후 9시가 넘었지만, 백야 덕분에 아직도 석양이 나와 있다.
6. 6월의 에스토니아는 기후도 좋고 녹음이 풍부.
10. 14. 에스토니아 동식물의 표본이 전시되어 있는 자연사박물관을 견학. 몸길이가 3m나 되는 엘크(箆鹿、Alces alces)의 박제를 보며 "내일 숲에 가서 만날 수 있을까" 하고 중얼거렸다.
11. 구시가지의 중심에 있는 라에코야 광장(Reakoja Plats)에서 점심.
" 'How about eating out with me?' 라는 영어만 기억하고 있어요. '나랑 밥 먹으러 가지 않을래?' 라는 난파용어(웃음)"
12. 15. 광장에서는 여름 동안 많은 시장이 선다. 그 중 한 군데, 에스토니아의 공예품을 파는 그의 앞치마를 입고 촬영. 그 밖에도 도기, 목공품 등 다양한 것을 팔고 있었다.
13. 구시가지에는 세그웨이를 빌려주는 곳이 있다. 균형을 잡기 조금 어렵지만, 오카다 씨는 곧 탈 수 있었다.
17. 구시가지에서 가장 높은 건물 성 올라프 교회의 탑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중. 조각같이 깊은 얼굴의 오카다 씨는, 16세기 유럽 건축물 안에 있어도 위화감이 없다. 본인은 "어느 나라든지 갈 수 있는 얼굴이에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변해요. 유럽계라든지 아랍계라든지... 최근엔 아랍계라는 말을 들어요" 라며 웃었다.
구시가지를 감싸듯이 길게 둘러 싼 성벽에 올라,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든다. 지형적으로 외부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던 거리를 지키기 위해, 성벽은 13세기 후반부터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졌다. 그 두께가 3m, 높이가 16m나 된다. 당시에는 4km에 걸쳐 46개의 탑을 세워졌으나, 지금은 2km에 26개의 탑이 남아있다.
에스토니아는 스프 같은 나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있어 즐거운 것이 무엇인지"
느긋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모두가 제대로 생각하고, 알고 있다.
그것이 보글보글 천천히 푹 끓여 만드는 스프 같다고 느껴졌다.
탈린의 거리가 가장 번창하였던 1407년에, 유복한 상인들이 세운 피리타 수도원. 16세기 리보니아 전쟁에서 러시아군에 파괴되어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몸이 가벼운 오카다 씨는 2층 부분으로 올라가, 거기서 점프. 부담 없이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높이가 있었다. 이날은, 부지 내에서 전통적인 행사가 있었다.
「여행하면서, 정체성(identity)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에스토니아의 숲에는 빙하기가 남겨놓은 거대한 바위가 지금까지 변함없이 남아 있다.
숲, 바다, 강, 습지...
에스토니아 자연의 전부가 있다, 고 전해지는 라해마아(Lahemaa) 국립공원은, 탈린에서 차로 약 1시간 반. 오카다 씨가 들어간 곳은, 그 속의 캐스무(kasmu)라 불리는 조그만 반도에 있는 숲. 가는 곳마다 빙하시대의 거대한 바위가 남아있어, 유구한 시간을 느끼게 한다.
「겨우 인간다워졌다고 생각해요. 요즘」
「"친밀한 시간"을 좀 더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
숲을 빠져나오면 캐스무(kasmu)의 바다가 펼쳐진다. 저 너머에는 핀란드가.
물이 너무 깨끗해서 무심코 맨발로 들어가 보았으나, 아직 물이 차가워 "차가워-! 아이싱 하는 것 같아" 라는 오카다씨.
오카다 준이치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릴 적부터 생각해 왔다.
"여행을 하면서부터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걸 질문받는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합니다만"
보통 생활에서는, 좀처럼 나올 일 없는 "정체성" 이란 단어. 오카다씨는 그것을 여행하는 동안 몇 번이나 말했다.
"그저 웃는 얼굴로 있으면 자신이 성립한다. 라고 하는 것은 20대까지. 지금부터는 역시, 내용이 없는 인간이라면 아무도 따라와 주지 않을 테고, 이 녀석과 함께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주지 않을 테니까"
오카다씨는 14세에 예능계로 들어오기 전부터 계속 "오카다 준이치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부딪치거나 어려웠던 때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흔들리지 않고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책을 많이 읽거나, 격투기라든지 암벽타기라든지 닥치는 대로 해 오기도 했고. 그건 육체의 힘을 몸에 익히고 싶었던 것뿐만 아니라, 인생 속에서, "이렇게 살고 싶다"고 선택했을 때 견딜 수 있는 자신으로 있고 싶다, 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외국에 나와보면, 일본에 뭐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손에 못 넣는 게 없네. 라고.」
이동 버스에서 보였던 농장이 꽤 평온하고 멋져 보여 급작스레 방문. 그곳의 주인인 이리야 부부는 흔쾌히 오카다씨를 맞이해 주었다. 직접 만든 사우나를 보여주거나 숲을 안내해 주신 수고에 오카다씨는 장작 패기를 도왔다.
「언젠가 자신의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에스토니아의 어딘가에 넓은 토지가 남아있지 않으려나」
Aitäh
에스토니아어로 "감사합니다"라는 의미
오카다 준이치가 에스토니아에서 물었다!
"당신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알고 있는 듯하지만 잘 모르는, 자신에게 있어서의 "행복"
그것을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모두, 깔끔하게 대답해 주었다.
만약 당신이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ライネル 씨(오른쪽)
- 다른 사람의 도움이 되는 것
アーチィ 씨(왼쪽)
- 많은 사람이 자신을 위해 살고 있으므로, 나는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소중히 하고 싶습니다.
기업가, SE. 자연보호활동가. 에스토니아 자연기금대표. Lets do it 프로젝트 주재자
「일본은 쓰레기가 많아요. 하지만 청소할 방법을 모르겠어요.」 - 오카다
「중국 속담 중에 "어떠한 긴 여행도 최초의 한 걸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는 말이 있습니다. 조금씩, 입니다.」
두 사람은, 숲에 있는 많은 쓰레기를 치우자고 인터넷에 호소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이 호소에 5만 명의 에스토니아인이 응해, 숲은 예전의 몇 배나 깨끗해졌다고 한다.
"정부에서 해 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하는 것으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을 생각해 주었으면 했습니다. 사람 머릿속의 쓰레기도 모으고 싶었습니다."
평소에는 다른 일을 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부자유가 없는 2명이지만, "나만 잘살면 된다" 는 발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합창단 소녀들
「모두에게 있어서 노래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오카다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에스토니아인은 노래하는 민족이니까」
피리타 수도원 터에서의 야외 콘서트에 출연하기 위해 모여 있던 합창단 소녀들. 에스토니아에는 <에스토니아 노래 축전/ 발트지역 가무 축전 / The Baltic Song and Dance Celebrations >라는 노래와 춤의 축전이 5년마다 개최되고 있으며,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에도 등록되어 있다. 그 정도로 이 나라 사람들은 노래를 사랑하고 있어, 생활 속에서도 극히 자연스럽게 노래가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날은 오카다 씨의 요청에 답해 농사일 중에 부르는 전통적인 노래 한 곡을 들려주었다.
(머리를 귀 뒤로 넘긴 소녀부터 시계방향으로 진행)
- 매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 지금 상태, 이것으로 좋다고 생각할 때가 행복. 건강하고 가족이.....
- 좋아하는 일이 있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이 되는 것이 행복.
-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고, 노래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ヤルーナ 씨
세라믹 공예가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 사소한 일이 잘되고 있다.
걱정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29살? 동갑입니다만, 19살 정도로 보이는데요.」 - 오카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18살 정도로 보여요.」
「엣!」- 오카다
구시가지의 성 카트리나 거리에는, 도기나 가죽제품 등 다양한 공방이 늘어서 있다. 그 중 하나, 세라믹 공방에서 제작풍경을 견학. ヤルーナ 씨는, 신기하게도 오카다 씨와 같은 나이. "중세의 건물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평소에는 그다지 의식하고 있지 않아요. 그것보다 내 공방이라는 생각입니다." 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었다.
유한 파르트(Juhan Parts) 경제통신대신
에스토니아 공화국정부
본인의 선거 슬로건에도 썼습니다만, “행복은 돈이 아니다”
가족과의 유대가 있으므로, 내가 건강하고,
그리하여 내 주위에 제대로 사회가 있는 것입니다.
「바루토(把瑠都関)를 알고 있습니까? 그는 에스토니아 출신이랍니다.」
「물론입니다. 잘 알고 있어요.」 - 오카다
에스토니아는 세계 굴지의 하이테크 국가라고 하기도 해서, IT 정책을 담당하는 경제통신대신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러 갔다. IT 화를 추진한 이유에 대해서 물었더니, "1991년에 구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했을 당시, 문화나 역사를 다시 일으킬 뿐만 아니라, 세계화대책으로 함께 새로운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IT 정책으로 국민 생활이 편리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종이 이용량이 줄어들어, 숲을 지켜줍니다. 집에서 은행 송금이나 선거 투표가 가능하므로,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아 대기 오염이 없습니다." 라며 환경에 대한 장점도 크다고 했다.
田根 剛 씨
건축가
에스토니아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짧은 시간을 소중히 하는 것이 행복의 기준인가, 싶어요.
가족, 친구, 숲 속.......
그 가까운 환경과 시간을 소중히 한다, 라고 하는..
「일본인은 뭐든지 빠른 결과를 원하는군요.」
「비자가 30분 내로 나오면서부터 바뀌었는지」 - 오카다
타네 씨는 파리에서 건축사무소를 주재. 2006년에 에스토니아 국립 박물관 국제 컴페티션에서 최우수상을 수상. 그 설계안은 구소련 공군의 활주로 터와 박물관을 연결하는 참신한 것이었다. 에스토니아 국내에서는 큰 물의로 미뤄졌으나, 타네 씨 자신은 "100년 앞까지 내다 보는 나라의 박물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들었을 때, 패배의 유산을 잊을 게 아니라, 미래를 향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현재, 박물관은 타르투(Tartu) 시에 건축 중. 2013년에 완성 예정. 오카다 씨와 타네 씨는 귀국 후에도 메일로 정체성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이전에는, 어쨌든 "자신"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오래된 거리와 광대한 숲, 그리고 최첨단 IT 기술이 공존하고 있다는 이 신기한 나라에서 오카다 씨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물었던 한마디가 있다. - 당신에게 있어 "행복" 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묻는 것이기도 했다.
"최근 2년 정도에 크게 바뀌었어요. 행복의 기준이. 그 전에 한 번, 24세쯤에도 변했었지만. 20대 전반까지의 저는, 무엇을 하더라도 '자신'이 가장 소중했었어요. 내가 이런 것을 하고 싶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만 잔뜩 추구했었습니다. 대본을 읽고 있을 때 말을 걸거나 하면 '방해 하지마' 라는 눈으로 노려보거나, 되고 싶은 자신과의 차이에 초조해져 엉뚱한 것에 화풀이하거나 했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이었어요(웃음). 그 기준이 점점 '자신'이 아니라, 작품을 위해서라거나 동료를 위해서로 변해갔어요."
오카다 씨의 24세로 말하자면, 드라마 <타이거 & 드래곤>, 영화 <도쿄타워>, <플라이 대디 플라이> 등으로 그 연기력이 주목받기 시작하던 때이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쭉 평가가 받고 싶어 이 일을 해 온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그걸 얻자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니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이번에는,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 막연히 생각하기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 생각이 27세쯤부터 급격하게 부풀어 올라, 점점 지역이나, 사회, 그야말로 국가라고 하는 영역까지 퍼져 가, 어딘가 출연할 때에도 '지금 일본의 엔터테인먼트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는 왕도라 할 액션이 없다' 라며 <SP 경시청 경호부 경호과 제4계>를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오카다 씨는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 친교가 깊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젊은 건축가를 시작으로, 카메라맨이나 스타일리스트, 크리에이터, 화가 등의 친구도 많다. 또, 5년 전부터 네비게이터(DJ)를 맡은 라디오 방송 <Growing Reed>에서는,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雄彦) 씨, 작가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 씨, 이츠키 히로유키(五木寬之) 씨 , 뇌 연구학자 모기 켄이치로(茂木健一郞) 씨 등 많은 전문가와 대담을 진행해오며, 거기에서의 만남으로부터 받은 영향도 적지 않다. 고 오카다 씨는 말했다.
"사람과의 만남이, 자신의 가치관을 크게 바꾸었다고 생각해요. 최종적으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사진을 찍을 때도, 결국 '나를 이렇게 찍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만 잔뜩 하고 있어봤자, 몇 장을 찍어도 다 같은 얼굴일 뿐이에요. 한 때, '한껏 잡지에 실렸는데, 나 전부 같은 얼굴이잖아!' 라는 것을 눈치챘어요. 그게 결코 자기 한계를 느꼈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무엇인가를 하려면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 제 입으로 말하긴 뭐합니다만, 저는 '어쩐지 재미있겠는데' 싶은 사람을 찾아내는 후각이 우수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기 페이스로 어기차게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었던 것 같지만, 맡길 때는 맡긴다. 2년 전쯤부터 간신히 그 균형이 잘 잡히는 것 같아요."
좋은 "장소"가 생기면 자연히 사람도 모인다는 생각
탈린의 거리를 산책 중, 오카다 씨는 스태프들과 축구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구나 싶었더니, 노점에서 아몬드를 사와 “맛있어요” 라며 내밀거나, 도중에 비가 내려 카페로 피신했을 때는, 여성 스태프에게 “어떤 타입이 좋아요?” “이런 남자가 어울리지 않을까?” 등의, 연애담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또 다음 날 아침, 이번에는 남성 스태프와 함께 탈린의 거리를 쇼핑. 여행은 시종 이런 분위기로 계속되었다.
" '장소'라는 말이 좋아요. 예를 들어 이번 촬영 같으면, 렌즈 속 영상뿐만 아니라 카메라맨 분의 세계관에 자신도 제대로 있을 수 있을까, 라는 것을 생각해요. 연기였다면 맡은 역할이 되어 제대로 그 현장에 있을 수 있을까, 하고. 그 생각이 넓어져, 이번에는 자기 자신이 좋은 '장소'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생각하고부터, 오카다 씨는 좋은 의미로 자신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 '장소'가 생기면, 자연히 여러 사람이 모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 에스토니아 여행에서도, 내가 무뚝뚝한 분위기로 있었으면 모두 즐겁지 않았을 거예요. 물론, 촬영이 끝나자마자 차에 올라타 모른 척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해도, 스태프 여러분은 저의 그런 태도도 상대해 줄 거라고는 생각해요. '맞거울질'은 아니지만, 이런 일을 해 오면서, 자신의 행동 하나로 모두가 바뀐다는 것을 자연히 배우게 된 것도 있어요. 그래서 반대로, 좋은 의미로 장소에 맞춰 자신을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주위가 즐거우면서, 나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을까. 그런 장소를 만드는 방법을 최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 <SP> 제작은 정말, 엄청난 일이었어요. 힘들었지만, 사전회의 때 스태프로부터, '꿈 고마워요夢をありがとう'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아, 이 작품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있어서도 꿈이었구나' 싶어 기뻤어요. 그러한 장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자신에게 있어서 강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인지가 보이지 않아, 발버둥치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여러 가지가 즐겁고, 편하게 살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하는 오카다 씨.
"집에 있을 때는, 선천적으로 성격이 밝지 못한 사람(ネクラ)입니다만. 완전히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영화만 보고 있어요. 그렇지만 밖에 나오면 외부용 에너지를 쓰면 되고, 누군가와 있을 때는 누군가와 있을 때의 에너지를 쓰면 된다, 어떤 에너지 사용법이라 해도, 전부 자신. 다양한 근육이 단련되고, 겨우 최근, 인간다워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질적인 남녀의 차이는 중요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30세를 맞이하는 오카다 씨. 지금까지 쭉, "사람" 으로서 본연의 자세를 생각해 온 것과 같이, 남자로서의 변하지 않는 비전도 갖고 있다.
"일적인 측면에서 남녀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저는, 그 이외에서는, 남자가 여성의 앞에서 제대로 남자로 있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 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뭐, 물리적인 것으로, 지진이나 재해가 발생했을 때라든지, 위험한 상황을 만났을 때라든지. 뭐라 해도 남자가 더 체력이 있기 때문에 여성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실제로 이번에 여행하는 도중 들렀던 농장에서 모두가 장작 패기를 도왔을 때도, 여성 스태프분들은 장작 한 개비 쪼개는데도 대단히 고생한 반면, 남자는 비교적 간단히 해내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런 남녀의 본질적인 차이를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여성을 지켜야겠다는 의식이 강합니다. 여성 입장에서는, '지켜 줄 필요 없어요.' 라고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저의 소망으로는...."
한편으로, "여성 앞에서는 몇 살이 되어도 바보로 있고 싶어요." 라고도 말한다.
"만일의 경우엔 지켜 줄 수 있으면 좋겠죠? 그 준비를 해 두면, 여성도 '그 사람, 평소엔 바보지만 만일의 경우엔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라고 이해해 준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하는 것보다, 이해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남자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도, 주위의 남자도, 그 노력이 부족하다, 고 최근 생각해요...... 그렇지만, 만일의 경우 남자는 해요. 초식남이라던가 이런저런 말이 있지만, 할 때는 합니다! ...... 라고 생각하는 일본 남자 아니 일본사회를 목표로 하고 싶습니다(웃음)"
행복의 기준은 자기밖에 갖고 있지 않은 것
"에스토니아에서 돌아가면 '행복이란 뭘까?' 를 새삼 골똘히 생각해 볼 것 같아요" 라고 말한 오카다 씨. 인터뷰 중에도 몇 번이나, "어쩜 이렇게 균형이 좋은 나라일까요?" 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에스토니아는 스카이프(Skype)가 개발된 나라이기도 해요. 이번에 만났던 분 중 한 분이 그 개발에 참여한 분이란 걸 알았을 때, 무심코 '엄청난 이익을 얻었겠네요?' 라고 묻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라는 기분에 정말로 멍청히 여겨져, 자신이 창피해 졌습니다. 이 나라는, 은행 송금도 선거도 전부 IT 화 되어 있는 한편, 오랜 거리나 숲을 제대로 지키고 있어요. 기업으로 많은 이익을 얻었어도, '누군가의 도움이 되고 싶다.' 라고 선뜻 말할 수 있는, 힘차게 달릴 곳은 힘차게 달리지만, 끝난 후에는 제대로 정리하는, 그 방법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여러 나라의 침략을 받으며, 사회정세가 몹시 변화해 온 지역이기 때문에 더욱 체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이런 것을 하고 싶다" 만을 추구했던 시기도 있었던 오카다 씨이기 때문에 더욱, 다른 사람보다도 두 배로 느낀 균형의 무게. 그런데도 "사람은 여러 가지로 흔들리지만, 베이스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해요" 라는 말을 한다.
"결국, 행복의 기준이란 것은 자기밖에 갖고 있지 않고, 인생에 여러 가지가 있어도 근본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주변에서 생각하는 행복이나 주변에서 축복해 주는 행복보다, 자기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데 무엇을 소중히 하고 싶은지, 그 선택의 기반이 변하지 않는 인간으로 있고 싶어요. 그러면 어떠한 상황이 되어도, 어떻게 해도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 '강함' 은 지금처럼 변화가 빠르고 격렬한 시대에 몹시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뒤에 있는 목차사진
아직 다 읽진 못했는데 신경쓰이는 말이 하나..
젖소를 보는 사진에 적혀있던,
"언젠가 자신의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에스토니아의 어딘가에 넓은 토지가 남아있지 않으려나"
오빠 뭐라구요?ㅋㅋㅋ
이 오빠 맘 먹으면 하실 분인데......
마을 만드는게 오빠의 온갖 취미특기 다 생각해 봤을 때... 딱인 것 같긴한데ㅋㅋㅋ
에스토니아는 너무 멀어요T^T
+ 해석을 쪼금씩 추가하고 있는데.. 지금 해석해 놓은 게 완벽하다고 할 수 없지만,
대충 슥~ 읽었을 때랑 내용이 다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뭘 읽었던 것인가 @_@
ㅇㅁ님 말대로 진짜 글이라도 써야 제대로 붙들고 모르는 글자 나오면 사전 찾아가고 하면서 읽게 되는 듯ㅋㅋㅋ
서툴고 틈나는 시간에 하려다 보니, 다 하는데 좀 오래 걸리지만.. 내용이 좋아서 질리지 않는다.
읽다가 또 반했어 ♡_♡ 오빠는 정말 멋진 남자야...
어둡고 침침한 성격이라고 해도 참 바른 사람인것같다
나를 지켜주겠다는 것도 아닌데 여자를 지키겠다! 하는게 어쩜 그리 멋진지...
오빠 부디 나를 지켜주세요....이런 좋은 기사에 망드립ㅠㅠ
+ 혹시 이해가 안 된다..싶은 부분이 있으면 그거슨 당신 탓이 아니라 나의 탓입니당 ㅇ_ㅇ
여긴 틀렸어~ 하는 부분이 있으면 꼭 알려주세요.. 틀리면 창피해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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