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명찰 제 2장 산법승부 4


4

하지만 결국 교본은 소중히 가지고 돌아왔다.
저녁부터의 근무가 끝난 후, 희미한 등불 아래서 책상 위에 올려 둔 교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꽤 두툼하다. 몇 가지인가 다른 주제의 교본을 하나로 합한 것이란 걸 알았다.
제일 처음 한 장을 넘기는 것이 두렵기도, 빨리 읽고 싶어 참을 수 없기도, 강한 감정의 모순이 일어나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올해로 스물둘. 그 말 탓이란 걸 알고 있다. 
하루미에게 있어 이겨낼 수 없는 감정이었다. 본래 직업인 바둑에서조차 품어 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연하인 도사쿠의 천재성을 눈앞에서 봤을 때도 이런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아니면, 어떤 감정에도 도망갈 곳이 있었다. 멍하니 공백 속으로 감정을 흩어버리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어째서 안 되는 걸까? 문득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알고 있을지 몰랐다.

바둑은 하루미에게 있어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일은 아니었다. 과거의 기보, 명승부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아쉬움과는 거리가 먼 감정뿐이었다. 지금 바둑기사들의 승부에도 피가 끓지 않았다. 산술뿐이었다. 이 정도의 감정을 갖게 된 것은 그것뿐이었다. 싫증 난 적이 한 번도 없다. 라는 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어떤 것은 기쁨이나 감동뿐만이 아니라 그 반대의 감정도 함께 가지고 온다. 자신의 부족함, 이르지 못함을 한탄하며 원망했다. 명인들은 그러한 생각조차 극복해 이겨낸다. 그런 게 승리였다. 자신에게 그런 것이 가능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큼 무서운 건 없었다. '지루한 승부'에 몸을 맡기는 편이 차라리 마음 편히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기보다 도망갈 곳은 이제 그곳밖에 없었다. 교본을 읽지 않고 돌려 드리는 게 좋겠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이런 두려운 마음과는 평생 인연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분명, 진정한 기쁨을 모른 채 죽어가겠지. 생이 끝나기 전에 이미 지금 살아 있는 이 마음이 죽어 버릴 것이다. 



팡-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하루미는 무의식적으로 교본을 향해 손뼉를 쳤다.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 행위였지만, 이것이 어린 시절부터 하루미의 심신에 물들어 있는 신앙에서의 작법이었다. 

(신도神道 설명)

하루미는 두 번, 세 번 더 손뼉을 쳤다. 이 순간 하루미에게는 세 번으로 충분했다. 자기는 지금 신사에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용기로 해 교본을 펼쳤다. 경이로움에 압도당했지만,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희미한 등불 탓에 순간적으로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곳이 있어 그것이 두려움을 누그러뜨려 주었다.
결코 하룻밤 만에 읽고 풀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훌륭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난해한 수리 산술은 대부분, 특수한 재능을 지닌 자만이 답을 구할 수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쓸데없는 것'이라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교본은 다르다고 말하고 있었다. 술식을 제대로 갖추고 자세히 조사해 가면 보다 많은 사람이 수리를 풀 수 있게 된다. 고 교본의 첫 장에 쓰여 있었다. 산술을 '학(學)'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이 비범한 무사의 본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주자학에서 학은 소학과 대학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대학을 이념, 소학을 기초 교육으로 볼 때, 이 교본은 대학과 소학을 엮어 견고히 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어떤 자라도 소학에서 대학으로 이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니면 그 길조차 따를 수 없다는 말 같은 건 없었다.

"......나라도, 되는 거죠?" 

교본을 향해 속삭이듯 물었다.

"......나라도"

복받치는 마음에 오히려 목소리가 가득 찼다. 대신 눈물이 뚝뚝 흘러 무릎에 떨어졌다.


'지루하지 않은 승부를 바라는가?'


로쥬(老中, 정무담당책임자) 사카이의 말이 갑자기 되살아나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 그것을 바란 적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자신이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드디어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산학'이란 말이 되어, 지금 자기 눈앞에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파도처럼 들고 나는 마음속에서 그때 하루미는 확실히 결심했다.

이 교본을 읽고 나서 문제를 만들자.
그리고 무라세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 이소무라 학당의 한구석에 붙여놓도록 하자.
오직 한 사람에게 헌납하는, 또한 도전하기 위해서인 만큼.
온 힘을 다해 독자적인 문제를 만들어, 세키에게 출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간단히는 되지 않았다.



무라세에게 교본을 빌려 온 날로부터 수일 후, 하루미는 성에 들어갔다. 직업인 바둑을 둬야 했기 때문이다. 상대는 로쥬 사카이. 여전히 의도불명, 담담히 바둑을 둘 뿐이었다. 하루미는 이 로쥬의 의도를 알아내는 걸 진작에 포기하고 있었다. 
 
한 대국이 끝나고 다시 첫수부터 시작하려는 순간,

"자네, 이런저런 재주를 갖고 있더군" 사카이가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예......"

여기서 재주(芸)란, 성에서 근무하기 위한 특수 기능으로, 상사의 필요에 맞춰 쓸 수 있도록 서류화시켜 이력서에서 관리한다. 하루미는, 1. 바둑 2. 신도 3. 주자학 4. 산술 5. 토지측량 6. 역술 이라고 되어 있다. 
원래 야스이가 2대 째로서는 바둑만으로 충분하다. 이 정도로 줄줄이 나열하는 건 차남, 삼남들의 태도였다. 이들은 일, 명성, 지위를 가지려고, 그렇지 않으면 평생 찬밥만 먹는 떠돌이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절박감에 오로지 발탁되기 위한 욕구로 재주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하루미의 경우 거의 바둑에 '질림'에서 온 비명이었다. 그것이 이렇게 많은 재주로 나타난 것이지만, 지금은 바둑 외에 산술만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라세에게 건네받은 세키의 교본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나,

"신도는 누구에게 배웠는가?" 사카이는 우선 그 점부터 물어왔다.

"주로, 야마자키 안자이 님께 배웠사옵니다"

"풍운아지?"

"예에......" 하루미는 모호하게 대답했다.

야마자키 안자이는 풍운아라고 한다면 다행이지만, 어디서나 파란을 일으키는 인물이었다. 불교, 주자학, 신도에 빠져 각 각을 연구한 안자이가 신도에 빠져 교토에 있을 무렵, 하루미는 아버지의 권유로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어쨌든 강직한 사람으로, 하루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너의 아버지는 신이 되었다.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지" 같은 말을 하며 이상한 모양의 묘표(墓標)를 멋대로 만들어 하루미에게 주었다. 물론 아버지의 묘에는 제대로 된 묘표가 있다. 안자이 나름대로 어린 하루미의 슬픔을 덜어주려 한 모양이었다. 하루미도 그것을 당혹스럽다 느끼지 않고, 기분 좋게 할아버지 같은 상대다고 생각했었다.


"격한 성품의 분입니다만, 평소엔 근면하며 이로정연(理路整然)한 분이십니다"

여하튼 의문이 풀릴 때까지 오직 맹렬히 공부를 되풀이했다. 안자이의 한평생은 불교, 주자학, 신도 세 명분이라고 말해졌다.


"그렇지 않고선 아이즈 공의 상대가 되지 않겠지" 혼잣말인듯한 사카이의 말이었다.

"아이즈히고카미(肥後守) 님......말씀이십니까?"

"부른 것 같더구나"

하루미도 모르는 일이라 솔직히 놀랐다. 하지만 호시나 마사유키(保科正之)는 아이즈 번저를 보면 알 수 있듯 열렬한 신도의 신자였다. 그와 동시에 주자학을 위대한 학문이라 하며 그 보급에도 열심이었다. 확실히 안자이는 마사유키가 학자로서 불러들일 최적의 인물이었다.

"그건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카이는 이 화제는 이미 잊었다는 듯,

"측량도 특기라고?" 라며 물어왔다. 토지 측량을 말하는 것이었다.

"예" 

토지측량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을 하려는데, "역술도 특기인가?" 다시금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예"

"번저 정원에 해시계를 설치해두었다고?"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다는 것에 새삼스러운 것 같지만, 또 다시 기가 막혀왔다. 도대체 이런 나의 무엇이 이 로쥬의 흥미를 끄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지만, 전혀 알 수 없었다.

"주판(셈)으로 식이 언제 일어나는지 알 수 있는가?"

"예......"

일식 혹은 월식의 정확한 산출은, 산술가라면 한 번쯤 계산해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토지측량보다 훨씬 고도의 산술이 필요한 것으로, 좀처럼 적중시키기가 어려웠다.

"땅을 측량하는 것보다도 하늘을 측량하는 것이 더욱 까다롭습니다만, 대략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좀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나?"

"예......동서고금의 역술을 검토해 지금의 산술에 비춰보면 보다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1,2년으로는 어림도 없는 대사업이었다. 사카이가 그것을 알고서 질문을 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애초에......어째서 해나 달이 이지러지는 것인가?"

사카이가 문득 진심으로 이상하다고 느껴왔던 것을 물어왔다. 


(하루미의 천문학 교실)


- 하루미로부터 태양과 달의 거리, 지상으로부터의 거리를 들은 후,


자그마치 사카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사람도 놀랄 일이 있구나 싶어 오히려 하루미가 더 놀랐다.

"멀군...... 사람이 만져보려 하는 것 만으로, 평생이 걸리는가. 사람이 하늘에 나아가려 한다면 말이지..."

하지만 사카이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계산을 한듯, 곧바로 머리를 흔들며,

"아니...... 평생이 걸려도 충분하지 않겠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예......"

하루미도 맞장구를 치고는 가만히 있었다. 바둑은 그냥 그렇게 내버려둔 채였다. 하지만 하루미는 침착하게 있었다. 사카이가 무슨 목적으로 질문하는 건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평생이 걸린다'라는 말이 이상히도 쾌히 가슴에 울려 퍼졌다. 세키에게 낼 문제에 대한 막연한 구상이 떠올랐다. 천문역술을 바탕으로 문제를 만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자네 북극출지(北極出地 : 북극고도, 북극이 땅에서 올라온 각도, 위도)는 알고 있지?"

갑자기 사카이가 말했다. 질문이라기보다 단정에 가까웠다.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확실히 달랐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던 무언가가 드디어 어딘가 도착한 듯한 울림이었다.


"토지측량술의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북극출지는..."

그저 알고 있다고만 하지 않고, 굳이 자세히 설명을 해 보였다.


"별을 좋아하는가?"

"태양, 달과 마찬가지로 좋아합니다"

"북극성을 보고 오게" 

갑자기 말이 떨어졌다. 틀림없는 명령이었다. 위도를 계측해, 지도의 근거가 되는 수직을 내고 오라는 것이었다.

하루미는 바둑판에서 물러나 정중하게 엎드려 물었다.

"예...... 어디의 북극성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산인(山陰), 산요(山陽), 동, 서, 남, 북 어느 곳이든 통행에 장해가 없는 곳이라면"

사카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렇지만 하루미는 엎드린 채 아연실색했다. 잘못하면 전 일본이다. 분명히 한 사람의 일이 아니다. 틀림없이 이미 북극출지를 위한 인선은 끝났고, 거기에 하루미가 참여하는 것일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긴 여행이 될 것인가?
아니, 그 전에 언제부터 시작하는 걸까?

"성에 들어 바둑 두는 것이 끝나는대로 가게. 남쪽과 서쪽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눈이 녹은 다음엔 북쪽으로 가게"

당장에라도 신음을 뱉을 것 같아 필사적으로 참았다. 바닥에 닿아있는 손이 조금씩 떨렸다.

"그......그러면, 반달남짓 후에는 출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뭐 걸리는 것이라도 있는가?"

"아니......"

그 순간 강렬한 결심이 솟구쳤다. 손의 떨림도 딱 멈췄다. 머릿속에서 교본을 앞에 두고 스스로 쳤던 손뼉소리가 울려퍼졌다.

"부족하지만 온 힘을 다해, 맡은 소임을 완수하도록 하겠나이다" 라고 말하면서, 그 마음은 이미 완전히, 사카이에게도, 그 명령으로도 향하고 있지 않았다.

앞으로 10일, 아니 해답을 이 눈으로 보기 전엔 출발할 수 없다. 
그렇다면 7일. 그것만 만들자. 그 세키에게 낼 문제를. 자기 역량의 한계에 전력을 다해 도전해 보는 거다. 누구에게 약속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칭찬받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다.

"시부카와 하루미"가 찾아낸, 자신만의, 그리고 온몸과 온 마음을 건 승부가 이 순간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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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루미의 여행이 시작되나요?! >_ < 하지만 아직 2장은 끝나지 않았습니다....ㅋㅋ


콘서트도 시작했고, 새 싱글도 나왔고, 프로모도 열심히 하고 있고..
포스팅거리가 많은데 이렇게 블로그를 놀게 두는 건...
내가 브이를 너무 열심히 보고 있어서ㅋ_ㅋ 눈을 돌릴 수가 없네요!!ㅋㅋㅋ 
브이가 너무 멋져서-_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기서 쓰기 시작하면 길어지니까..  그냥 이쯤에서ㅎㅎ


좋아서 기쁨과 감동뿐만 아니라 그 반대 감정이 일기도 한다는 하루미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미 좋아하는 걸 찾았고, 또 잘하고,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그런 하루미가 부럽기도ㅎㅎ 앞으로 더 고민하고 부딪치고 깨지고 하면서 점점 더 강한 하루미가 되겠죠.. 강해지면서도 잃지 않을 사랑스러움 *-_-* 
오카다군이 이런 사랑스러운 하루미의 기쁨과 고민을 잘 표현했을 거라 믿어요~~ㅋㅋㅋ

영화는 오늘 완전 크랭크 업! 오카다군은 하루 먼저 크랭크 업! 
이 덥고 습한 여름날.. 72일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 멋진 영화가 될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오카다군...☞☜ 동시에 여러 일 하느라 고생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카다군의 스케쥴을 내가 알 순 없지만, 이제 한 동안은 콘서트 뿐 아닌가요?ㅠㅠㅠ
콘서트에서 수니들 기 팍팍 받고, 조금 쉬면서 재충전도 하고.. 그리고나서...
멋진 드라마 하나 찍어주세용-ㅠ-

이제 내년.... 개봉 날을... 책 보면서 기다릴게요-_ㅠ
정말 개봉 하기 전엔 다 읽을게요ㅋ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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